북한산 어디까지 가봤니?
자그마치 8년이다. 8년 전에 못가본 정상을 올라가보기 위해 북한산을 다시 찾았다. 북한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대충 경기 북부에 위치하고 높이는 약 835.6m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산 중 하나이다. 등산 난이도 또한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기에 처음 등산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딱 좋은 산이다.
북한산
최근 이것저것 정신도 없고 정리해야할게 너무 많아서 생각도 정리하고 못하던 운동도 해볼겸 등산을 가기로 맘먹었다. 그렇게 맘먹은지 두 달만에 아침일찍 집밖을 나서는데 성공했다. 나름의 위안으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중요한건 결국 다녀왔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북한산을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러왔는데 최근 코로나때문에 정말 사람이 없다… 신도림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아침 8시 반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건 처음본다.
북한산도 여러 등산 코스가 있고 목적지가 있는데 그중 내 목적지는 바로 ‘백운대’ 이다. 해발 835.6m라는 말에 별거아니네^^ 라는 생각과 함께 많이 혼나고왔다. 당연히 등산길은 직선으로 가지 않고 평지가 아닌 오르막길에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기에 나중에 밥먹고 일어날때는 난생 처음 허벅지에 쥐가나서 어떻게 푸지는 몰라 10분을 한탄하듯 허벅지만 치고있었다.
이번에 등산을 가기전에 단순히 가기만 하는게 아니라 내가 어디를 얼마나 힘들여서 잘 다녀왔는지 기록해줄 수 있는 앱이 없을까 하다가 트랭글
이라는 앱을 알게되었다. “게임같은 운동 앱”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수많은 등산코스에 대한 정보와 회원들간의 랭킹부터 본인의 기록관리까지 가능하다.
이걸 사용하게되면 베터리가 정말 빨리 닳겠지 생각했는데 정말 빨리 닳았다. 다음에는 꼭 보조베터리를 챙겨서 가야겠다. 앱 메인화면은 아래와 같이 생겼는데 난 오늘 북한산을 열심히 다녀와서 ‘짐꾼2’가 되었다 :)
북한산성에 도착하기 전에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여러 후기들을 봤었는데 왕복 4시간 정도가 가장 많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아서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걸릴까 기록해보기위해서 트랭글 앱을 사용했다. 처음 사용해봐서 불광역부터 기록했는데 버스를 타니 제한속도 초과라고 계속 경고음이 울렸다. 다음부터는 입구부터 시작해야겠다.
나는 등산이 처음이기에 호흡조절도 하며 지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의외로 북한산성 입구 to 북한상성 입구까지 3시간 3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왜이렇게 예상보다 빨리 오게 됐을까? 그건 마지막에 설명하기로 한다. 불광역부터 시작해서 정상에서 쉬고 내려와서 밥먹고나서까지하니 총 4시간 41분이 걸렸다. 버스를 탔던터라 최고 속도가 54.3 km/h가 되었다. 설마 내가 저 속도로 걸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올해 도쿄올림픽에서도 나를 볼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꼭두새벽부터는 아니지만 오전 9시 반쯤이 되어서야 북한산성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없을거같던 산으로 운동을 갔지만 모두 나와 똑같은 생각이였는지 눈치게임에 실패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등산을 갔지만 숨을 너무 가쁘게쉬는 바람에 마스크가 다 축축해져서 정상쯤가서는 결국 벗었다. 마스크를 벗는 순간 맑은 산공기에 한 번 놀라고 갑작스러운 빈혈에 또 한 번 놀랐다.
정상에 도착했을때는 정말 너무나 속이 시원했다. 최근 별다른 성취감이 없던 무료한 인생에 작은 성취감이라도 스스로에게 줘보자라는 생각으로 올라왔고 태극기를 눈앞에서 본 순간 세상이 다 평화로웠다. 산 정상에서는 바람이 정말 너무 거세게 불어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정말 낙사도 불가능한건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마음만은 평온했다.
다시 내려갈 생각에 왔던길을 돌아봤을때는 정말 끔찍했었다. 생각없이 프로젝트와 실험을 반복해서 진행하며 고생끝에 끝냈더니 이제와서 다시 정리해야하는 그 기분을 고스란히 북한산 정상에서 느낄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올라갈때보다 내려갈때가 더 힘든것은 알았지만 어느정도인지는 이 날 실감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때 무릎을 많이써서 안그래도 무릎이 좋지않아 큰 무리가 가는 운동을 지양했었는데 이 날 무릎이 정말 갈아 없어지는줄 알았다. 내려오고 쉬고 미끄러지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겨우 내려왔고 올라가는건 한참이였지만 내려오는건 한 순간이었다.
등산에서 인생을 생각해봤는데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라며 불가능해보이고 힘들일도 누구나할 수 있다는 얘기로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올라가며 들었던 생각은 높은 곳을 지향할 수록 왜 앞이 안보이냐면 계단이 높으면 위를 볼수가 없다. 언제 미끄러지고 넘어질지 몰라서 앞과 땅만 보고 가게된다. 그러다가 나무에 머리는 여러번 박았다. 또한 내려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올라갈때는 아무런 위험없이 앞과 땅만 묵묵히보면서 천천히 꾸준히 올라가면 됐지만 내려갈때는 빠르게 내려오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해 죽을판이였다. 어딘가에서 추락한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있기 마련이고 감당하지 못하면 그만한 위험이 찾아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북한산을 다녀오며 느낀점이 생각보다 꽤있었다. 등산가기 전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갔던건데 오히려 걱정많던 잡생각들은 사라져서 좋았고 새로배운 것들이 더 많았었다. 꽤 예상외의 것들도 있었기에 언제 등산 희망 쿨타임이 다시 돌지 모르겠지만 등산을 가고싶은 맘이 생길때 보기위해서 적어보기로한다.
북한산에서 생각한 의외의 것들
북한산을 등산하며 보고 느낀것들 중 예상외의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크게 다섯가지 정도가 있고 각 키워드를 쓰면서 까먹기전에 적어보자면 장갑
, 음악
, 물
, 연령대
그리고 휴식
이 되겠다.
장갑
정말 오랜만에 가는 산이었기에 옷을 어떻게 입고가는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다리는 따뜻하게 위는 얇은 옷을 여러겹 껴입고 신발은 등산화가 없기에 최대한 미끄러지지 않고 편한 운동화 그리고 가볍게 물과 지갑 충전기 등 들고다닐 수 있는 가방을 매고 갔다.
불광역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수많은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들이 있었다. 그분들이 입은 패션에 비교하자니 내 의상은 한 없이 초라했다. 다들 세계여행을 떠나는지 굉장히 큰 가방을 매고 있었고 스키장에 가는 것도 아닌데 장갑과 폴대는 왜 들고다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북한산성 입구에 갈때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보고 ‘날씨가 오늘 장갑을 낄정도로 춥지는 않은데 풀세팅을 하고 오신분들이 많구나 역시 준비성이 많을 수록 좋지 ‘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등산은 다리로 하는데 왜 장갑까지 끼고 왔을까 라는 생각이였다.
그렇게 입구부터 별생각을 다하며 정상에 다다르자 어느새 네발로 걷고 있었고 장갑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장갑을 꼭 챙기자.
맨 손으로 걸으면 이렇게 된다.
이 구간이 거의 네발로 올라오는 구간이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두발에서 네발로 점점 퇴보한 인류를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음악
산에 도착해서 처음 한참을 걸을 때까지 music is my life였다. 오로지 음악을 들으며 산행을 하고 있었고 최근 post malone의 노래가 너무 좋아서 계속 반복해서 듣고있었다. 심지어는 이와중에 양심의 가책을 덜기위해 토플 듣기 지문을 들으며 어제했던 공부를 복습하고 있었다.
초중반쯤 걸어왔나 문득 내가 왜이러고 있을까 생각했다. 산까지와서 이렇게까지 하는게 과연 좋은 경험일까 생각했고 이어폰을 뺏더니 집에서는 듣기 힘든 음악이 여기 있었다. 나뭇잎 밟는 소리, 바위에 발이 미끄려서 나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가방끈이 삐걱거렸던 소리 등 입구부터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나 듣고 있던 시간이 아쉬웠다.
물
북한산은 계곡 물놀이 때문에 어렸을적 정말 자주가던 산이다. 그런데 오늘 등산을 하면서 문득 이 물들은 어디서 오는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문돌이였던 나는 평소 물의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라고 알고 있었기에 문학적으로 ‘물이란 날개없는 천사와 같아’ 라고 생각해도 실제로 물이 하늘로 다시 날아갈 수는 없을 터였다.
뭔가 정말 기본적인 내용일것 같지만 나는 그렇지않기에 평소 자주보던 사물궁이 삼촌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나무나 토지 등이 그동안 내린 물을 흡수해서 저장해두고 땅속으로 물을 계속 흐르게하여 물들은 물줄기를 찾아나가 계곡으로 계속해서 흐르게 된다는 얘기이다. 큰 나무의 경우 많게는 1000L까지 물을 끌어올린다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연령대
분명 불광역에서부터 북한산성 입구까지는 30~40대 어른들밖에 못봤기에 역시 어르신들이 등산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주변에 ‘등산갈사람?’ 이라고 물어보면 다들 나를 아재로 봤기에 등산은 어르신들이나 가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상으로 갈 수록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도대체 이 많은 젊은이들은 갑자기 젠이라도 됐는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더 놀라웠던건 정상까지 나도 정말 힘들게 올라왔는데 10살쯤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들도 아버지가 힘겹게 데리고 올라오는것이 아닌 앞장서서 올라오고 있었다. 체구도 정말 여리여리해서 ‘저 다리는 얼마나 튼튼한걸까 내 무릎은 이제 곧 소멸될거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중 아이들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밥 먹었으니 힘나지?’ 라는 말에 아이들이 ‘아니~’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내 생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아버지가 힘겹게 데리고 올라가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역시 아버지의 삶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휴식
처음 올라갈때 맘먹은 것은 괜히 급하게 올라가다가 금새 지쳐서 쉬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는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페이스 조절 잘하고 숨도 고르게 쉬면서 천천히 쉬지말고 꾸준히 올라가자였다. 평소 나의 모토 또한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말고’ 이기에 등산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정상이 다가올때까지 나는 처음부터 계속 같은 속도로 올라왔다. 나를 앞서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지만 나중에 보면 다들 중턱에서 쉬고 결국에는 내가 내려갈때나 마주치게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느린속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짧게 걸렸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정상까지 그렇게 계속 가게될줄 알았지만 정상을 400m앞둔 시점에서는 골로 가게될판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무시하지 못할정도로 지끈거렸고 이거 무리해서 안쉬고 더 올라갔다가는 중턱에서 쓰려져 그대로 하산할 것 같았다. 그래서 중간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고 결국은 멈추게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쉬고나서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잠시 멈췄다고해서 정상에 올라가길 포기한건 아니였다. 나는 다시 올라가기 위해 쉬었을 뿐이고 그렇게 잠깐을 쉬고나서 정상까지 올라갔다. 멈추는건 포기하는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잘못됐었다. 멈추는건 다시 가기위해 준비하는 휴식이었다. 멈추는 건 포기하는 거야라고 고집했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무리
오늘 예상외로 올라가면서 힘들어서 별생각없이 그냥 다녀오겠구나 생가했는데 의외로 느낀점이 많았다. 평소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이번 프로젝트는 이런게 정말 좋았어 이런게 정말 필요했어라고 느껴야지라고 시작했지만 산 한번 다녀오는게 더 많이 느끼고 좋은 경험이었다 라고 생각이 든다.
북한산 정상에 다녀오는게 사실 쉽지는 않았어서 앞서 말하기를 언젠가 다시 갈때가되면이라며 한참 뒤가 될것처럼 얘기했지만 담주에는 다른곳을 가게될거같다.
역시 등산의 마무리는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이다. 소머리국밥이고 9,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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