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2부작 제1부 : 좋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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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에 맞춰 써보는 회고글

지난 2019년 회고글을 쓰고 어느새 반년이 흘렀다. 사실 회고글을 쓸 생각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회고글 유행에 맞춰 반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어떻게 버티고 살았는지 생각을 해봤다. 이번 2020년 2부작 제1부 키워드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는데 크게 목표를 달성했던 것도 없었기에 무슨 일을 해왔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얼마 전 문득 들었던 생각이 떠올라서 그에 대한 회고글을 쓰는 게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들

올 한 해 내 계획은 1년 내내 유학준비였다. 토플, GRE, CV, SOP, 추천서, 학교조사 그리고 연락까지 준비할 게 정말 많다. 이렇게 작년 말부터 세웠던 계획이 드디어 3월에 그 첫 개막을 강남역 10번 출구에 있는 해커스 어학원에서 열었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무언가를 준비한 건 재수 때 이후로 처음이다. 재수할 때도 지금과 비슷하게 4월에 공부를 시작해서 2월에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계획은 ‘공부는 혼자 하는 거고 위로는 필요 없었다’ 였다. 누구와도 연락하며 지내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기를 반년, 재수 생활 동안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오가며 얼굴만 익숙해진 사람들 뿐이었다. 당연히 인사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9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터무니없는 목표라고만 생각했던 성적이 당연시되었다. 어느새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인지 얼굴에 표정이 생겼는지 옆에 있던 친구와 하나둘 말을 섞게 되었다. 그리고 2월 내가 원하는 곳은 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내가 생각도 못 했던,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 뒤로 생각해보면 사람 복이 참 많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상반기 동안에도 해커스에서 공부하며 알게 모르게 어느새 친해져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밖에서 누군가 친해질 일이 있을 거라고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따로 회사에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같이 어떤 활동을 하는 게 아니었기에 공부를 위해 다닌 학원에서 누군가 친해져야겠다는 계획을 하지도 않았고 예상도 못 했다. 나는 사람을 잘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의심이 많고 나에게 안맞는다 생각이 들면 철저하게 벽을 친다. 그럼에도 지금 돌아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여럿 있다는 건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 준비를 위한 첫 시작이었던 토플은 나를 바닥으로 가라앉히기에 충분하고도 남은 장애물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하나둘 하고 싶은 거 잘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에 자신감은 충분하다 생각했지만, 토플을 하면서 내 자존심은 해저 1,000미터에 사는 해수어와 인사할 수 있을 정도였고 성취감이 무슨 맛이였는지 기억도 안 나기 시작했다. 아마 유학 준비를 위해 토플 시작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이유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뿐이었다. 서로 학원에서 처음 알게 됐지만 정말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덕분에 무사히 목표까지는 아니지만 필요한 토플성적은 우선 맞추고 무사히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Hi, tootouch. I'm blob fish :(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민 많은 시기에 내 고민을 덜어준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참에 다니는 학원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생님들께 정말 많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도 수많은 학생을 가르쳤고 정말 많은 학생의 고민을 들어오셔서 그런지 내 걱정도 많이 해주셨다. 좋은 선생님을 알게 되어 성적도 많이 올랐고 덕분에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고민도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시는 좋은 사람을 얻게 되었다. 조교로 일하게 된 이후로는 받은 만큼 더 도움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먼저 고민하고 도와드렸다. 생각 이상으로 놀랐던 건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수업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고 그만큼 스터디하는 학생들도 정말 많았다. 선생님 이미지에 영향이 없도록 스터디를 열심히 하게 되면서 오가며 인사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좋은 사람도 알게 되었다.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지금 내 어깨 쳤냐?

영어 성적을 준비하며 느꼈던 건 다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었다.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영어라는 장애물 때문에 한 공간에 모여 공부를 한다. 로봇 공학 박사 과정을 가기 위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의사로 다시 취업하기 위해 토플 점수가 필요했던 사람도 있었고 의대 편입, 교환 학생, 군인 그리고 제일 벙쪘던건 검사로 일하다 철학 공부를 하기위해 토플 준비를 하시던 분도 있었다. 세상 참 넓다지만 학원이라는 작은 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도 흔한 경험은 아닐 거라 생각된다.

상반기 나작성 우수작

이번 상반기 ‘나만의 작은 성취감’ 공로 1위라고 한다면 단연 파스타가 꼽히지 않을 수 없다. 눈에 띄게 오르지 않는 영어 성적을 보며 무언가 작은 성취감이 없으면 오래 버티지 못하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게 요리였고 하루 1 파스타로 하루를 달랬다. 4월 10일부터 5월 24일까지 먹은 파스타는 모두 45그릇이다 @1day1pasta. 소소하지만 요리 블로거가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떼어보려 한다. 사실 여기서부터 본문이고 위에 회고글은 위장이었다.

준비물

파스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만들기 간단한 음식이다. 알료올료는 사실 식당에서 팔 음식이 아니라는 얘기도 직접 만들어보며 느꼈다. 밖에서 알료올료 돈 주고 사 먹을 거라면 나에게 그 절반만 달라! 또한, 파스타 만드는 시간도 15분이면 충분하다.

까르보나라 준비물은 아래와 같다.

  • 계란 2개
  • 50원 크기만큼의 파스타면
  • 소금
  • 파슬리 (없어도 된다)
  •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필수! 그냥 올리브유 넣으면 맛없다)
  • 닭가슴살 (베이컨 대신 넣었다)
  • 그라노 파다나 치즈 (없어도 된다)

같이 먹을거

  • 단호박 1/2개
  • 토마토 1개
  • 크림치즈
  • 우유 식빵


사실 오늘 메인이다. 딱히 회고글도 요리 글도 쓸 계획이 지금까지 없었지만 크림치즈는 써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나머지는 모두 포장이었다는 사실.


크림치즈 둠둠이

요리 과정

단호박을 집에서 먹는 건 처음이다. 생각보다 해먹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고 평소 단호박을 뭐든지 잘 먹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마트에 갔는데 귀여운 미니 단호박이 단돈 980원에 1개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단호박은 생으로는 껍질이 두꺼워서 칼질할 때 조심해야 한다. 라고 한다. 사전에 주의사항을 잘 들었기에 전자레인지 2분이면 딱딱했던 껍질도 한여름 아스팔트 위 녹아내린 플라스틱 마냥 흐물흐물해진다.


씨앗을 먹으면 뱃속에서 싹이 튼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기에 (모르셨으면 주의!) 단호박을 삶기 전에 절반으로 예쁘게 잘라서 씨앗을 퍼낸다. 그리고 찜기에 올려 10분간 약불로 잘 쪄주면 된다.



요리는 오래 걸리는 순서부터 하나씩 해주면 마지막에 기다릴 필요없이 바로 먹을 수 있다. 단호박 다음으로 오래 걸리는건 닭가슴살을 삶는 일이기에 먼저 닭가슴살을 삶기 위해 물을 끓여준다.


그냥 넣으면 심심하기 때문에 소금을 소금소금 넣어준다

그리고는 까르보나라에 소스가 될 계란을 풀고 약간의 소금간과 후추 그리고 치즈를 갈아준다. 치즈는 이왕 넣을 거면 계란이 안 보일 때까지 갈아 넣자.


다음은 면을 삶아준다. 면을 삶을 때 주의할 점은 물에 소금을 왕창 풀어준다. 바닷물이 될 정도 풀어도 된다. 면에 간이 베기 위해 푸는 것이 아니라 이후 사용한 면수에 간을 맞춰놓기 위함이 크다.


재료에는 못 썼지만 사실 스뎅펜도 파스타 재료 중 하나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스뎅팬쓰면 달라붙지 않아여? 엄청 잘 타지 않아여?’ 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깊은 맛이 나는 거다. 몰랐징


닭가슴살을 다 삶았으면 (덜 삶아졌어도 된다) 기름 위에 적당히 잘라서 마이야르아닌 마이야르가 올라오길 기다려본다. 마이야르가 뭐야! 하면 승우아빠 보고 오자 -> 후라이팬으로 스테이크 맛있게 굽는법, 마이야르!


면을 언제 펜에 올리면 될까 궁금한 사람도 있을 거다. 아마 파스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알단떼라는 말을 들어봤지 싶다. 그러나 파스타는 알단떼가 제일 맛있지라며 스테이크 미디움웰던으로요 하는 것 마냥 파스타 알단떼로 해서 주세요 하면 파스타로 맞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알단떼는 펜에 올리기 딱 좋은 상태이지 완성된 상태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 대부분 파스타 봉지에 알단떼까지 필요한 시간이 다 쓰여있으니 참고하면 될 듯하다.


면수도 두국자 정도 넣고 가만히! 냅둔다. 그래야 전분이 생긴다. 걸쭉!

어느 정도 면이 삶아졌고 면수가 쪼그라들었다면 기름이 적당히 남았는지 보고 아까 풀은 계란물을 넣어준다. 불은 약불로하고 여기서부터 중요한 게 볶음밥처럼 파스타를 잘 휘적휘적해줘야 한다. 이 과정을 만테까레라고 한다. 기름과 계란물이 잘 섞이도록 하는 과정이다 (emulsion~). 이걸 안 하면 소스가 절대 걸쭉하게 나오지 않는다.


잠깐 가만히 있으면 다만든 파스타에 스크램블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자.


완성! 다 만들었으면 예쁘게 담으면 된다. 사실 사진 안 찍으면 그냥 프라이팬에 놓고 먹는 게 파스타 월드의 국룰이다.


아까 잘 쪄놓은 단호박과 사놓은 토마토를 잘 송송 썰어서 대망의 크림치즈와 함께 올려먹으면 끝이다.


다 만든 음식은 컴퓨터 앞에서 먹는 게 이 분야 국룰이지 않을까 싶다. 키보드에 수저 놓는 공간이 있으면 아마 잘 팔리지 않을까 싶다.


야식으로 먹는 맥주와 크림치즈 빵이면 글 하나 쓰는것도 뚝딱이다.


제1부를 마치며

‘돌아보니 다 얻는 게 있더라~’ 라는 말 틀린 거 없다. 그러나 남는 게 내가 원하는 거냐 아니냐는 또 다른 얘기더라. 예상하지 못하고 만난 좋은 사람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연이다. 그러나 올해가 아직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조금 더 욕심이 난다. 올 한 해 세웠던 목표를 이루고 싶다. 바랬던 목표가 이뤄지길 바라며 다음 2부에서는 어떤 좋은 인연과 결과가 생길까 기대하며 단.어. 외우러 가야겠다. 하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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